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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사라진 아이] 1편소설 주머니 2024. 8. 23. 11:55728x90반응형
평범한 아침
서울 외곽의 한적한 마을, 봄기운이 가득한 아침이었다. 나무들은 연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아침 이슬이 내려앉은 잔디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준은 늘 그렇듯이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의 아내, 서현은 식탁에 아침을 차려놓고 있었다. 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며 집 안을 채웠다.
"지민아, 일어나라! 학교 늦겠다." 서현이 부엌에서 큰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러나 지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서현은 딸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덮인 이불을 걷어 올렸다.
"엄마, 조금만 더..." 지민이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서현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얼른 일어나. 오늘 새로운 운동화 신고 가야지."
그 말에 지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며칠 전 부모님이 사준 하얀 운동화를 생각하며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민은 새로운 운동화를 신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구나. 얼른 아침 먹고 가야지." 서현이 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침 식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이준은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서현은 딸이 좋아하는 김을 잔뜩 올린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지민은 즐거운 표정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뭐해?" 이준이 딸에게 물었다.
"음, 선생님이 오늘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한다고 했어요. 동물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하는 거예요. 저는 고양이 주제로 하려고요!" 지민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거 재미있겠네. 발표 준비 잘해야겠다." 이준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식사를 마친 후, 지민은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서현이 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말했다.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 알겠지?"
"네, 엄마." 지민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민이 현관을 나서자, 서현은 문 앞에 서서 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작고 귀여운 몸집이 아침 햇살에 비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나 서현은 그 순간,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 따위는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현은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잠시 더 지민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딸의 무사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랐다. 그리곤 부엌으로 돌아와 식탁을 정리했다.
이준은 출근을 준비하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오늘 무슨 일 있어?" 그녀의 얼굴에 잠시 비친 그늘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그냥... 괜히 걱정이 돼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아." 서현이 솔직하게 말했다.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안아주었다. "우리 지민이 잘할 거야. 늘 그렇듯이.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서현은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 지었다. "그래, 맞아. 별일 없을 거야."
그러나 그날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서현은 오전 내내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등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바쁘게 일하는 동안은 딸에 대한 걱정이 잠시 잊혀졌지만, 짧은 휴식 시간마다 지민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엄마, 나 왔어!"라고 외치며 집에 들어오는 딸의 밝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불안감이 점차 커졌다. 지민이 돌아올 시간이 점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점점 더 조여왔다.
오후 3시. 서현은 가게 문을 닫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지민이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집안은 조용했다.
"지민아?" 서현이 집 안으로 들어서며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딸이 집에 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혹시 친구 집에 갔나? 아니면 학원을 먼저 간 걸까? 그러나 학원 가방은 여전히 집에 있었다. 서현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곧바로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지민이 엄마인데요. 혹시 지민이 학교에 남아 있나요?"
교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아, 지민이요? 오늘 학교에서 특별히 남아 있는 아이들은 없었는데요. 아침에 수업은 정상적으로 들었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서현은 그제야 진정한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하게 딸의 친구들에게 전화해 보았지만, 모두 지민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서현은 남편 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민이가 집에 없어. 학교에서도 본 사람이 없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그는 서현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며, 동시에 자신의 불안감을 억누르려 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 내가 바로 갈게."
서현은 떨리는 손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제 딸이 실종됐어요. 몇 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아요."
경찰의 응답은 차분했다. "우선 진정하세요, 부인.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지민이 평소 다니던 길이나 좋아하던 장소가 어딘지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서현은 경찰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경찰은 신속하게 수사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현을 안아주었다. "괜찮아, 우리 지민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는 아내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불안이 스며 있었다. 그들은 함께 앉아 경찰이 연락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계는 늦은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고,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지민아, 대체 어디 있는 거니?" 서현은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집안의 정적이 더 깊어질수록 그녀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날 밤,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아직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혹시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서현과 이준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과 불안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민이 돌아올 때까지 이 고통스러운 기다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밤이 깊어가면서 집안의 어둠이 무겁게 드리워졌다. 이준과 서현은 지민의 방에 앉아 있었다. 방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지민이 아침에 입고 나간 교복이 깔끔하게 걸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손으로 정성스럽게 꾸민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서현은 일기장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깨알같이 쓰인 글씨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어요. 친구들이 예쁘다고 해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동물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저는 고양이를 주제로 할 거예요. 엄마가 말한 대로 발표 잘할 수 있을까요?"
서현은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일기장에 번졌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준은 아내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자신의 고통을 삼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서현이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지민이가 어딘가에서 무서워하고 있을 텐데, 우리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어야 한다니..."
이준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신도 똑같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 순간,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이준은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경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 씨, 김형사입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경찰서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새로운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이준은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찰서로 가야 해. 단서를 찾았대."
서현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한테서 온 것일까?"
"그럴 거야." 이준은 자신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들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로 가는 길은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밤하늘은 먹구름이 낀 듯 어두웠고, 도로 위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서현은 차 안에서 끝없는 불안과 싸우며, 손을 꼭 모아 쥐었다. 이준은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거야. 지민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이준은 애써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김형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이준과 서현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준 씨, 서현 씨, 이쪽으로 오세요." 김형사는 그들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 안에는 몇 명의 경찰들이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흩어져 있었다. 김형사는 그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보한 CCTV 자료에서 중요한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김형사는 그들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지민이 학교를 나와 혼자 걷고 있는 모습이 잡혀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걷고 있었지만, 곧 어떤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지민에게 말을 걸었고, 잠시 후 지민은 그 남자와 함께 골목으로 사라졌다.
"저 남자는 누군가요?" 서현이 불안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김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마지막입니다. 그 후로 지민이의 모습은 CCTV에 찍히지 않았습니다."
이준은 숨을 삼키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저 사람이... 지민이를 데려간 건가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지민이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형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서현은 남편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그 남자가 지민이를 어딘가로 데려갔어요... 우리 지민이를..."
이준은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경찰이 그를 찾도록 돕는 거야. 지민이를 되찾아야 해."
그날 밤, 이준과 서현은 경찰서에서 밤을 지새웠다. 경찰의 수사는 더욱 바쁘게 진행되었고, 시간은 서서히 흘러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흐릿하게 지나갔고, 오직 딸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728x90반응형'소설 주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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